2026년 1월 9일, 서울 케이스포돔(KSPO DOME)에서 열린 조용필 콘서트는 평소와 달랐습니다. 이날은 조용필의 60년 지기 죽마고우인 배우 안성기의 발인일이었습니다. 죽마고우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절친한 친구를 뜻하는 말로, 조용필과 안성기는 중학교 동창으로 만나 평생의 벗이 되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친구여’를 부르던 조용필의 목소리는 떨렸고, 객석에서는 “울지 마요”라는 외침과 함께 눈물이 번졌습니다.
경동중학교 29번과 30번, 60년 전 시작된 우정
조용필과 안성기의 인연은 1960년대 서울 경동중학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1950년생 조용필과 1952년생 안성기는 나이 차이에도 같은 반이 되었는데, 안성기가 또래보다 일찍 입학했기 때문입니다. 3학년 때 둘은 출석번호 29번과 30번으로 나란히 앉은 짝꿍이 되었습니다.
서로의 집을 오가던 소년들
당시 조용필은 서울 정릉, 안성기는 돈암동에 살았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매일 같이 걸어다닐 정도로 가까웠고, 서로의 집을 오갈 만큼 친분이 두터웠습니다. 조용필은 1997년 KBS ‘빅쇼’에서 “크리스마스에 집에서 외출을 못하게 했는데 안성기가 밖에서 불러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고 회상했습니다. 조용필의 아버지는 “안성기는 괜찮다, 안성기하고는 얼마든지 놀아도 괜찮은데 다른 애들하고는 안 된다”라고 허락했을 정도였습니다.
서로 다른 길, 변함없는 우정
안성기는 5살 때부터 아역배우로 활동한 스타였고, 조용필은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둘의 우정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조용필은 “아역배우로 활동했던 그 친구가 정말 부러웠다. 어린 나이임에도 연기에 깊이 빠져 있는 게 느껴졌고 나중에 어른이 돼서도 인기 있는 배우로 성공할 것으로 믿었다”고 말했습니다.
국민배우와 가왕, 함께 받은 문화훈장
세월이 흘러 안성기는 ‘국민배우’로, 조용필은 ‘가왕(歌王)’으로 대한민국 문화예술계를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2013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에서 두 사람은 나란히 은관문화훈장을 받았습니다. 은관문화훈장은 문화예술 발전에 공적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되는 훈장으로, 가수와 배우가 같은 날 나란히 수상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훈장을 받은 뒤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대화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안성기는 “친구 조용필은 자연인 그대로의 평범한 사람이라면, 가수 조용필은 어마어마하다. 진짜 거인”이라며 “가창력은 물론이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는 창작 의지, 이런 것들은 정말 귀감이 된다”고 존경을 표했습니다.
“성기야, 또 만나자” – 빈소에서 전한 마지막 인사
2026년 1월 5일, 안성기가 향년 74세로 별세했습니다. 안성기는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고 완치 판정 후 재발해 투병 중이던 가운데, 2025년 12월 30일 자택에서 음식물이 기도에 걸려 쓰러진 뒤 의식불명 상태로 6일을 지내다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습니다.
부고 소식을 들은 조용필은 전국투어 서울 공연을 나흘 앞둔 바쁜 일정에도 한달음에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조용필은 “공연 준비로 입술이 다 부르틀 정도지만, 친구가 변을 당했다는데 어떻게 안 올 수 있겠나”라며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는 “지난번에 퇴원할 때 ‘용필아, 나 다 나았어’라고 해서 정말 그런 줄만 알았다”며 “그런데 갑자기 친구가 변을 당했다는 소식에 가슴이 무너진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조문을 마친 뒤에는 “하늘에 올라가서 편했으면 한다. 위에서도 연기를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성기야, 또 만나자”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습니다.
발인날 콘서트, ‘친구여’로 전한 애도
2026년 1월 9일 오전 6시, 안성기의 발인이 엄수되었습니다. 명동성당에서 천주교 추모 미사와 영결식이 거행되었고, 정우성이 영정을, 이정재가 금관문화훈장을 들었습니다. 설경구, 박철민, 유지태, 박해일, 조우진, 주지훈이 운구를 맡아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습니다.
같은 날 저녁 7시, 조용필은 케이스포돔 무대에 올랐습니다. 애이불비(哀而不悲)는 슬프되 비통해하지 않는다는 뜻의 사자성어입니다. 조용필은 친구를 떠나보낸 슬픔 속에서도 약속한 무대를 지켰습니다. ‘친구여’를 부를 때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습니다. 떨리는 음성에 객석에서는 “울지 마요”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고, 1만여 관객은 함께 눈물을 흘리며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안성기 영결식 상세 정보
장례 진행
안성기의 장례는 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한국영화배우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5일장)으로 치러졌습니다. 영화인장은 한국 영화계에 큰 공헌을 한 인물에게 수여되는 장례 형식입니다. 원로배우 신영균이 명예장례위원장을, 배창호 감독과 이갑성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이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정부는 고인이 별세한 날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습니다.
영결식 참석자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비롯해 이준익 감독, 배우 현빈, 정준호, 박상원, 변요한 등 각계 인사 60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고인의 장남 안다빈 씨가 생전 부친의 편지를 낭독하며 눈물을 보였고, 영결식장은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장지
영결식을 마친 운구 행렬은 경기 양평 별그리다로 향해 고인을 안치했습니다. 안성기는 이곳에서 영면에 들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조용필과 안성기는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서울 경동중학교 동창으로 만났습니다. 3학년 때 출석번호 29번(조용필)과 30번(안성기)으로 짝꿍이 되면서 60년 넘는 우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안성기는 언제 별세했나요?
2026년 1월 5일 오전 9시에 향년 74세로 별세했습니다. 혈액암 투병 중 2025년 12월 30일 음식물 기도 흡인으로 쓰러진 뒤 의식불명 상태로 6일을 지내다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습니다.
안성기 발인은 언제 진행되었나요?
2026년 1월 9일 오전 6시에 발인이 엄수되었습니다. 오전 8시 명동성당에서 천주교 추모 미사, 오전 9시 영결식이 거행되었으며, 장지는 경기 양평 별그리다입니다.
‘친구여’는 어떤 노래인가요?
조용필의 1983년 5집 수록곡입니다.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우정을 담은 발라드로, 조용필이 안성기 발인날 콘서트에서 이 곡을 부르며 60년 지기 친구를 추모했습니다.
애이불비(哀而不悲)는 무슨 뜻인가요?
슬프되 비통해하지 않는다는 뜻의 사자성어입니다. 조용필이 친구를 떠나보낸 슬픔 속에서도 약속한 무대를 지키며 보여준 태도를 표현한 말로, 절제된 애도의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안성기 영결식에 누가 참석했나요?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준익 감독, 배우 현빈, 정준호, 박상원, 변요한 등 60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정우성이 영정을, 이정재가 금관문화훈장을, 설경구, 박철민, 유지태, 박해일, 조우진, 주지훈이 운구를 맡았습니다.
조용필이 빈소에서 한 마지막 인사는 무엇인가요?
“성기야, 또 만나자”입니다. 조용필은 “하늘에 올라가서 편했으면 한다. 위에서도 연기를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도 함께 전했습니다.
마무리
조용필과 안성기의 60년 우정은 대한민국 대중문화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중 하나로 기억될 것입니다. 중학교 짝꿍으로 시작해 각자의 분야에서 정상에 오른 두 사람은 서로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힘든 시간에는 곁에서 위로했습니다.
안성기의 발인날 무대에 오른 조용필이 부른 ‘친구여’는 60년 우정의 무게를 담은 헌정이었습니다. “성기야, 또 만나자”라는 마지막 인사처럼, 두 사람의 우정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