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6일 충북 보은국민체육센터에서 울려 퍼진 함성과 박수소리는 한국 씨름계의 새로운 전환점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26세 허선행(수원특례시청)이 1년 9개월이라는 긴 침묵을 깨고 태백장사(80kg 이하) 정상에 다시 올랐습니다. 위더스제약 2025 민속씨름 보은장사씨름대회에서 펼쳐진 이날의 승부는 그저 한 경기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한국 씨름계의 대표 스타가 겪은 좌절과 재기, 그리고 끝내 이뤄낸 감동적인 복귀 드라마였습니다.
허선행은 이날 태백장사 결정전(5전 3선승제)에서 같은 팀 선배인 문준석(34)을 3-1로 제압하며 개인 통산 6번째 태백장사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특히 이번 승리는 2023년 10월 안산김홍도장사대회 이후 20개월 만에 얻은 값진 성과였습니다. 황소 트로피를 들어올린 허선행의 눈가에 맺힌 눈물은 그가 걸어온 험난한 길의 무게를 말해주었습니다.
씨름계 아이돌에서 대한민국 대표 태백장사로
허선행의 이름을 처음 알린 것은 2019년 KBS 예능 프로그램 ‘씨름의 희열’이었습니다. 당시 국내 실업팀 소속 선수 중 막내였던 그는 수려한 외모와 넘치는 패기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특히 단 몇 초 만에 승부를 내는 화끈한 경기력과 예능 감각까지 겸비하며 ‘씨름돌(씨름계 아이돌)’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허선행을 진정한 스타로 만든 것은 외모나 방송 출연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모래판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실력이었습니다. 2019년 천하장사 씨름대축제에서 스무 살의 나이로 생애 첫 태백장사에 올라 ‘2000년대 이후 최연소 태백장사’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는 한국 씨름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허선행은 1999년 7월 22일 서울에서 태어나 182cm, 86kg의 체격으로 태백급(80kg 이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8년 초등학교 2학년 때 씨름을 시작했으며, 2019년 양평군청으로 실업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세곡초등학교, 방학중학교, 송곡고등학교를 거쳐 한림대학교에 진학했으나 1학기 만에 중퇴하고 씨름에 전념했습니다.
2025년 3차례 준우승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다
2025년 시즌은 허선행에게 쓰라린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1월 설날장사대회, 4월 평창오대산천장사대회, 5월 문경단오장사대회에서 연속으로 결승에 올랐지만 모두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3전4기’라는 표현으로 불릴 만큼 아쉬운 결과들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4월 평창오대산천장사대회에서는 같은 팀 동료인 문준석에게 패했고, 5월 문경단오장사대회에서는 홍승찬(충북음성군청)에게 3-1로 밀려 또 다시 준우승을 기록했습니다. 이런 연속된 아쉬움 속에서도 허선행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2025년 준우승을 3번 했는데 성장하는 발판이라고 생각하고 인내의 시간을 가졌다”고 말하며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유지했습니다.
그의 인내심은 마침내 결실을 맺었습니다. 보은장사씨름대회에서 허선행은 16강에서 박진우(영월군청)를 2-0으로 완파했고, 8강에서는 설날장사대회에서 자신을 꺾었던 이광석(울주군청)을 2-0으로 설욕했습니다. 준결승에서 오준영(정읍시청)을 2-0으로 제압한 후 마침내 결승에 올랐습니다.
운명의 동료 대결, 문준석과의 숙명적 경기
보은장사대회 결승전은 단순한 경기를 넘어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스토리를 담고 있었습니다. 허선행과 문준석은 둘 다 수원특례시청 소속으로 평소 함께 훈련하는 동료였습니다. 문준석은 허선행보다 8살 많은 34세의 베테랑으로, 이미 통산 10차례 태백장사에 오른 경험 많은 선수였습니다.
두 선수는 2022년부터 여러 차례 맞붙으며 라이벌 관계를 형성해왔습니다. 특히 올해 4월 평창오대산천장사대회에서는 문준석이 허선행을 꺾고 우승한 바 있어 이번 대결에 더욱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결승전에서 허선행은 첫 판을 배지기에 이은 밀어치기로 가져간 후, 둘째 판에서 안다리 공격에 무너져 1-1 동률을 허용했습니다.
하지만 허선행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3번째 판을 안다리 공격으로 응수해 다시 리드를 잡았고, 4번째 판을 들배지기로 마무리하며 승부를 확정지었습니다. 경기 후 허선행은 “팀원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되었다”며 “이재준 시장님과 이충엽 감독님, 임태혁 코치님을 비롯한 팀원들의 성원에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부상과 재활을 극복한 불굴의 의지
허선행의 씨름 인생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2020년 ‘씨름의 희열’ 촬영 중 허리 부상을 당해 심각한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2021년에는 십자인대 부상으로 재건술을 받아야 했고, 1년 가까이 재활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당시 허선행은 “십자인대 부상 후 재활하면서 은퇴를 생각할 만큼 정말 힘들었다”며 “씨름할 때가 가장 행복한데 한동안 못하게 되면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습니다.
특히 2021년 설날장사대회에서 태백장사에 오른 직후 펑펑 운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당시 허선행은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다”며 “주위에서 ‘허선행은 이제 더 이상 안 될 것’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했다. 정말 너무 힘들었다”고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김기태 영암군민속씨름단 감독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섰습니다. 2022년에는 추석장사씨름대회와 안산김홍도장사씨름대회를 연달아 우승하며 완전한 부활을 알렸고, 2023년에도 안산김홍도장사씨름대회에서 우승했습니다.
허선행 태백장사의 화려한 우승 기록
허선행은 이번 보은장사씨름대회 우승으로 개인 통산 6번째 태백장사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그의 주요 우승 기록을 살펴보면:
- 2019년 천하장사 씨름대축제 – 생애 첫 태백장사, 2000년대 최연소 기록
- 2021년 설날장사 씨름대회 – 부상 극복 후 감동적인 복귀
- 2022년 추석장사 씨름대회 – 1년 7개월 만의 3번째 우승
- 2022년 안산김홍도장사 씨름대회 – 연속 우승으로 전성기 입증
- 2023년 안산김홍도장사 씨름대회 – 통산 5번째 타이틀
- 2025년 보은장사 씨름대회 – 1년 9개월 만의 복귀 우승
특히 허선행은 씨름 메이저대회 중 2개 대회에서 우승하며 진정한 실력자임을 입증했습니다. 천하장사 씨름대축제와 설날장사 씨름대회는 한국 씨름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로 꼽히는 만큼, 이 두 대회에서의 우승은 그의 기량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성과입니다.
한국 씨름계에 불러온 새로운 바람
허선행의 등장은 한국 씨름계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기존에 ‘할배들만 보는 운동’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씨름이 2030 젊은 층에게도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씨름의 희열’ 방송 이후 씨름 경기 영상이 유튜브에서 수십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대중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허선행이 출전하는 경기에는 ‘행바(허선행만 바라보는 팬들)’라고 불리는 팬들이 대포카메라를 들고 응원하러 올 정도로 인기가 높습니다. 이는 기존 씨름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현상으로, 씨름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허선행 자신도 이러한 변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씨름 선수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고, 전통 스포츠인 씨름을 일본 스모처럼 인기 종목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씨름돌보다는 씨름이 더 빛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태백장사 꽃가마와 황소 트로피의 특별한 의미
씨름에서 ‘꽃가마’는 장사(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입니다. 우승자를 화려하게 장식된 가마에 태워 관중들 앞에서 축하하는 전통적인 의식으로, 한국 씨름만의 독특한 문화입니다. 허선행이 이날 탄 꽃가마는 1년 9개월간의 긴 기다림과 인내의 시간을 보상받는 값진 순간이었습니다.
태백장사에게 주어지는 황소 트로피 역시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황소는 힘과 끈기를 상징하는 동물로, 씨름 선수들의 정신력과 체력을 대변합니다. 허선행이 황소 트로피에 입을 맞추는 모습은 그가 얼마나 간절히 이 순간을 기다려왔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장면이었습니다.
경기 후 허선행은 “태백장사를 못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이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열심히 했는데 잘되지 않아서 속상했다”며 “장사에 오르지 못한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이 자리에 오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잘 안 풀려 힘들었는데 팀원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되었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미래를 향한 새로운 다짐
이번 우승 후 허선행은 새로운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는 “정상에 올라서서 다른 대회에서도 우승하고 싶다”며 “노범수(울주군청), 기다려라!”라고 외쳤습니다. 노범수는 허선행과 같은 나이로 함께 성장해온 라이벌로, 두 선수 간의 경쟁은 한국 씨름계의 볼거리 중 하나입니다.
현재 허선행은 수원특례시청 소속으로 이충엽 감독의 지도를 받고 있습니다. 2023년 초 영암군민속씨름단에서 수원시청으로 이적한 후 적응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팀에 융화되어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허선행은 “팀을 옮기면 먹는 것부터 쉬는 것, 팀 분위기까지 정말 많은 게 바뀐다. 이런 것을 빨리 받아들여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며 “하지만 이제는 완전히 적응했고, 더 많은 장사로 보답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씨름계의 미래를 이끌어갈 리더
허선행의 성공 스토리는 개인적인 성취를 넘어 한국 씨름계 전체에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씨름도 프로리그로 전환해야 한다”며 “실업과 프로는 연봉은 물론 훈련 환경과 선수 관리 측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크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프로리그로 전환하면 선수 생명력도 길어지고 씨름 저변도 더욱 넓어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현재 한국 씨름계는 19개 팀 체제로 운영되고 있지만, 대부분이 지방자치단체 운영 실업팀이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허선행은 “팀은 많지만 예산 문제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대여섯 개 팀을 제외한 나머지는 열악한 상황”이라고 현실을 진단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허선행 같은 스타 선수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집니다. 그는 “화려한 수식어보다 열심히 하는 선수, 씨름을 사랑한 멋진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며 “선수들이 진짜 원하는 것을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씨름계의 변화가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결론: 한국 씨름의 새로운 전설이 시작되다
허선행의 6번째 태백장사 등극은 단순한 개인적 성취가 아닙니다. 이는 한국 씨름계의 현재와 미래를 상징하는 의미 깊은 사건입니다. 1년 9개월간의 긴 침묵을 깨고 다시 정상에 오른 그의 모습은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인간 승리의 드라마이자, 전통 스포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희망적인 신호입니다.
26세라는 나이, 아직 충분히 젊은 허선행 앞에는 더 많은 기회와 도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보여준 불굴의 의지와 끝없는 노력은 앞으로도 한국 씨름계를 이끌어갈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허선행 태백장사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모래판 위의 황소처럼 강인한 정신력으로 무장한 그가 앞으로 써나갈 더 큰 전설을 기대해봅니다.
허선행의 복귀는 한국 씨름이 단순한 전통 스포츠를 넘어 현대적인 스포츠 엔터테인먼트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한국 씨름계 전체에 가져올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며, 더 많은 젊은 선수들이 그의 뒤를 이어 모래판 위의 꿈을 키워나가기를 바랍니다.